
애장판 1권 표지
(그러고 보니 애장판 사야 하는데…….)
서전 아이즈는 권수로는 40권, 햇수로는 무려 15년에 달하는 기간 동안 연재되던 작품입니다. 불로불사의 술법을 사용하는 요괴 삼지안 흠가라. 그리고 삼지안 흠가라에게 생명을 먹힌 불사신, 우. 인간이 되고 싶어 하는 최후의 삼지안 소녀 파이와 그녀의 우 후지이 야쿠모의 이야기가 끝을 맺은지도 올해로 벌써 어언 10년(2002년에 완결되었으니까)이 됐군요…….
아무튼 전 4부 구성인 서전 아이즈에서 제가 가장 인상 깊게 본 대목은 제2부인 『성마전설』편입니다. 단행본으로는 3~5권에 해당하는 부분입니다. 전체 분량으로 따지면 3/40밖에 안 되는, 짧다면 짧은 부분인데도 아직도 잊혀지지 않아서, 서전 아이즈 이야기가 나올 때는 언제나 이 성마전설 편 이야기를 꼬박꼬박 합니다.
■ 성마전설 편의 도입
1부, 그러니까 2권 마지막에서 파이는 행방불명이 되고, 불사이기만 할 뿐 무력한 소년이었던 후지이 야쿠모는 목숨과 마음을 저당 잡힌 삼지안 소녀를 쫓아 전세계를 방랑합니다. 그리고 2부 시작인 3권에서, 엄연한 요괴인 파이가 느닷없이 일본의 여고생으로서 떡 하니 등장하죠. 아야노코지 파이라는 이름으로.
행방불명되었던 4년간, 파이는 기억을 잃고 일본인 노부부에게 거두어져 양녀로서 자란 것입니다. 자신이 강대한 힘을 감추고 있는 요괴라는 사실을 모르다가 4년만에 그녀를 찾아낸 야쿠모와의 만남을 시작으로, 불로불사의 힘을 노리는 인형 요괴의 습격과 또다른 '삼지안'의 인격이 발현함으로써 생기는 트러블을 거친 뒤, 자신의 기억을 되찾으려는 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 남녀 주인공 입장의 역전
재미있는 점은 1부와 비교했을 때, 남녀 주인공의 입장이 완전히 역전된 구조라는 겁니다.
1부에서 야쿠모는 게이바에서 아르바이트하며 근근히 살아가다가, 아버지가 티베트에서 찾아낸 파이를 맡겨버리는 바람에 코가 꿰이고 일상을 빼앗겨 인간이 되기 위한 여행을 떠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4년 동안 죽을 고생(불사신이니 죽진 않지만) 한 뒤로 싸움도 좀 하게 되고 수마술도 습득한 야쿠모는, 기억을 잃어버린 파이와 만나 역으로 그녀가 손에 넣은 일상을 빼앗고 여행길로 이끄는 입장에 서게 됩니다. 덕분에 아야노코지 파이는 야쿠모를 멘토처럼 여기기도 하죠.
아야노코지 파이도 그래요. 1부에서 막 불사신이 되어서 멋도 모르고 불사성을 뽐내었다가 큰코 다친 야쿠모처럼, 자신이 특별한 힘을 갖추었다는 진실을 깨닫고 나서 살짝 들떴다가 쓴맛을 보죠.
아무튼 이런 둘은 기억을 되찾기 위해 여행을 떠나면서, 우여곡절을 겪으며 정을 쌓아나갑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남자 쪽은 이미 맹목적이라고까지 해도 좋을 애정을 표현하며 헌신하고 있죠. 여자 쪽은 그런 애정에 당황도 하고 부끄러워하기도 하면서, 차츰차츰 연정을 느끼고요. 후지이 야쿠모는 막연히 기억을 되찾기를 원하며 (불사신이기도 하니) 제 몸 다치는 걸 아까워 않고 헌신했지만…… 아야노코지 파이는 기억의 유무와는 상관없이 연심을 느끼게 됩니다.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요.
■ 반전
그리고 잔인한 반전이 다가옵니다.
기억을 잃은 파이라고만 생각했던 그녀는, 사실은 파이 본인이 아니라 완전히 별개인이었던 겁니다! '아야노코지 파이'라는 인격의 정체는 바로 원래 인격을 봉인하는 역할이었던 뱀의 요괴 화시오(化蛇)였죠. 상대의 인격을 봉인하고 조종하는 술법, 천령릉이 시술될 때 파이가 저항한 덕분에 술법이 완벽히 걸리지 않았고, 원래는 파이의 몸을 조종했어야 할 화시오마저 기억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지금이야 모르겠는데 당시 이 부분을 봤을 때는 정말 충격적이었습니다. 기억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차근차근 정을 쌓아갔건만, 사실은 그게 처음부터 착각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니. 그 동안 야쿠모가 보여줬던 헌신과 애정은 사실 아야노코지 파이가 받아야 할 게 아니었던 겁니다.
과거 파이에게 천령릉을 걸었던 베나레스는 그 사실을 폭로하며, 원래의 추한 뱀 요괴로 돌아갈 것인지, 아니면 파이의 몸을 차지하고 정인 곁에 남아 파이인 척 할 것인지 선택을 강요합니다.
4년 전…….
정신이 드니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있었고, 무척 자상하게 대해주셨어요.
나더러 기억상실이라고 하시며, 무척이나 자상하디 자상하게 대해주셨어요.
켄켄과 돈과는 중학교에서 알게 됐어요.
제일 가는 친구들이에요.
따로 어디 가지 않아도 셋이 있으면 무척 즐거웠어요.
방과 후의 냄새를 맡으며 나누는, 끊기지 않는 수다…….
당연히 영원히 계속되리라고 생각했던 시간.
그게 제 보물이었습니다.
반짝반짝 빛나는 보물이었어요.
고마워요, 야쿠모 씨.
행복하고 즐거운 매일이었지만 제겐 뭔가 부족했어요.
하지만 그걸 야쿠모 씨와 다른 사람들이 가르쳐줬죠.
틀림없이── 그것이 『성스러운 힘』.
그리고 아야노코지 파이는 짧디 짧은, 4년 동안의 인생을 포기하고, 자신의 몸을 원래의 주인에게 돌려주는 선택을 합니다. 저 독백과 아야노코지 파이의 선택이야말로 《3×3 EYES》라는 만화의 주제를 관통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인간이고 싶어서, 사랑하는 사람을 구하고 싶어서 인간이기를 포기한 아야노코지 파이의 선택은 후에 그 몸의 주인이 다시 한 번 답습하죠.
■ 아야노코지 파이와 아야노코지 요코
하지만 동고동락하면서 적잖은 정을 쌓아왔던 파이의 또다른 인격, 삼지안은 뱀으로 돌아가야 할 '아야노코지 파이'에게 새로운 모습, 그리고 아야노코지 파이의 삶을 계승한 기억과 인생을 선물합니다. 화시오는 '아야노코지 요코'라는 이름으로 다시금 새 삶을 얻었죠.
훗날 아야노코지 요코는 다시 등장합니다만, 화시오로서의 기억도 되찾은 요코는 성마전설 편에서 활약했던 아야노코지 파이와는 캐릭터가 많이 달라져서 아쉬웠지 뭐예요. 훌쩍. 결국 엄격히 볼 때 '아야노코지 파이'라는 캐릭터는 성마전설 편을 끝으로 사라진 거죠. 개인적으로는 진(眞) 파이와 아야노코지 파이 둘이서 한바탕 아수라장을 펼쳐줬으면 싶었는데, 그렇게는 안 되더라고요.
아무튼 그런 이유로 제게 《3×3 EYES》의 헤로인이란, 단행본 3~5권 동안만 잠깐 등장했던 아야노코지 파이입니다. (차점자는 파이의 이중인격인 파르바티 4세)
성마전설 편 이후, 3부와 4부를 거치며 서전 아이즈는 스케일이 점차 커져가고 이야기 노선도 좀 달라지죠. 인간이 되는 것은 뒷전이고 파르바티 4세는 "인간은 악하다"며 옛날에 말했던 자신의 말──"인간의 성스러운 힘"──과 자신의 여행을 부정하는 듯한 언사마저 하지 뭡니까. 아우. 아무래도 긴 연재 기간 동안 작가분의 심경에 변화가 생긴 게 아닐른지 싶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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